문학/한시

한강에서 뱃노리 하며

충암 이영길 2017. 4. 6. 20:14


  

작법으로 읽는 한시(1)
부지(不知)

  

오자서 묘(伍子胥廟)

 

동문에 눈알 걸어도 분이 삭이지 않아
천고토록 푸른 강에 파도를 일으키네
요즘 사람들 선현의 뜻을 알지 못하고
조수 머리 얼마나 높은지만 물어보네

 

掛眼東門憤未消괘안동문분미소
碧江千古起波濤벽강천고기파도
今人不識前賢志금인불식전현지
但問潮頭幾尺高단문조두기척고

- 박인량(朴寅亮, 1010~1096), 『동문선(東文選)』 19권 「칠언절구(七言絶句)」

  
해설
   “모른다.[不知]”

 

   종종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기도 하는 이 말이, 한시에서는 전편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절구시(絶句詩)에서 제3구인 전구(轉句)의 1~4자에 ‘주어+不知(不識)’의 형태로 쓰일 경우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제1구와 제2구에서 황량, 암울한 현실을 묘사하고, 제3구에서 이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주체를 설정한 다음, 제4구에서 그 주체가 그저 한가로운 행위만 한다는 식으로 엮어나가는 기법이다. 앞 두 구절의 황량, 암울함이 더욱 극대화되는 효과가 있다. 애처로운 마음을 강조하거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는 세태를 한탄할 때 옛 시인들은 이런 틀을 즐겨 사용하였다.

 

   이 시는 고려조의 문신인 박인량(朴寅亮)이 송(宋)나라에 사신 갔을 때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지략가인 오자서(伍子胥)의 사당을 지나면서 감회를 읊은 것이다. 오자서는 월(越)나라를 패망 직전까지 몰아쳐서 오나라의 원수를 갚는 큰 공을 세웠지만, 훗날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자결하였다. 머지않은 장래에 오나라가 멸망할 것을 직감한 그는 죽어서도 멸망을 지켜보겠다며 자신의 눈알을 동문 밖에 걸어두라는 유언을 남겼다. 과연 승리에 도취되어 자만에 빠졌던 오나라 왕은 절치부심한 월나라의 공격을 받고 대패하여 죽었다.

 

   이 고사의 본질은 바로 안이한 현실 인식으로 인한 패망인데, 후인들은 오로지 오자서의 원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인은 이 교훈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럴 때 오자서의 고사에 담긴 이면의 교훈을 구구절절 표현하지 않고, 강물을 매개로 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부지(不知)’, ‘불식(不識)’의 기법으로 처리한 것이 절묘하다.

 

   조선 선조조의 문장가인 석주(石洲) 권필(權韠)의 「정부원(征婦怨)」이라는 시도 이런 기법을 사용하여 깊이를 더 한 것이다.
출정한 낭군이 죽은 줄도 모르고 / 征婦不知郞已沒
아내는 밤 깊도록 겨울옷을 다듬이질하네 / 夜深猶自擣寒衣
   어린 자식이 부모의 죽음을 모른 채 상가에서 천연스럽게 노닐 때, 보는 사람의 슬픔은 배가 되기 마련이다. 전장에 징발되어 간 남편이 죽은 것을 알고 울부짖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보다, 남편이 죽은 줄도 모른 채 남편을 위해 겨울옷을 다듬이질하는 설정이 더 공감을 자아낸다.

 

   ‘부지(不知)’의 주체가 사람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직접적인 감정의 표현이 없는 산천초목이나 조류, 어류를 의인화할 수도 있다. 당(唐)나라 시인 잠삼(岑參)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뜰의 나무는 사람들 다 떠나간 줄 모르고 / 庭樹不知人去盡
봄이 오자 여전히 옛 꽃을 피우네 / 春來還發舊時花
   번성했던 한(漢)나라가 망한 뒤 황폐해진 황실 동산. 감상해 줄 이들이 없는데도 무심히 핀 꽃이 망국의 슬픔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드는 촉매가 되는 것이다.

 

   부지(不知)의 용법은 위에서 보듯이 간결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효과가 있다. 이처럼 편장을 구성하는 작법까지 아울러 살펴보는 것도 한시 감상의 묘미를 더하는 한 방법이 될 것 같아 소개해 본다.

 작법으로 읽는 한시(2)
막위(莫謂)
 

한강에서 뱃놀이하며[漢江泛舟]

 

틈내어 한나절 맑은 강에서 뱃놀이하는데
어인 일로 한 쌍의 백조가 놀라 날아가네
사람이면 다 피해야 한다고 여기지 말거라
나는 배 타고 낚시나 즐기려는 사람이니

 

偸閑半日泛淸江투한반일범청강
怪爾驚飛白鳥雙괴이경비백조쌍
莫謂世人皆可避막위세인개가피
携竿我欲伴篷窓휴간아욕반봉창

- 정수강(丁壽崗, 1454~1527), 『월헌집(月軒集)』 2권 「칠언절구(七言絶句)」

  
해설
   근체시(近體詩)의 절구(絶句)를 보면, 특정 시어(詩語)의 경우 그에 따른 일정한 전개 방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의 독자들은 한시를 직접 지을 일이 없기 때문에 크게 와 닿지 않겠지만, 과거의 문사(文士)들은 이런 패턴에 각별히 유념하면서 학습과 창작을 하였다. 이를 유형별로 정리한 책이 바로 『연주시격(聯珠詩格)』인데, 조선 초기에 시인들의 학습서로 유행하였다.

 

   ‘~라고 말하지 마라’라는 의미의 ‘막위(莫謂)’나 ‘막언(莫言)’, ‘~로 향하지 마라’라는 의미의 ‘막향(莫向)’, ‘~을 비웃지 마라’라는 의미의 ‘막소(莫笑)’ 등과 관련된 패턴도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데, 시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수법 중의 하나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제3구에서 ‘막위(莫謂)’ 등의 글자를 놓고, 제4구에서 그렇게 말한 이유를 밝혀 주는 방식이다. 당연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제4구에 담겨 있다. 이 방식은 전구(轉句), 즉 제3구에서 이루어지는 시상의 전환을 독자들이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세속적인 벼슬길에서 벗어나 초야에서 유유자적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것은 과거 동양권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인식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서를 토로하는 대상으로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갈매기이다. 기미를 알아채는 감각이 뛰어난 데다 물가를 배경으로 한가로이 지내는 회화적 이미지가 강해서일 것이다.

 

   이런 유의 시는 주로 세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갈매기를 통해 부끄럽게 자각한다는 식의 내용 전개가 이루어진다. 소재를 시 속에 소극적으로 참여시켰다고 할 수 있다. 고려 때의 문신인 유숙(柳淑)이 지은 「벽란도(碧瀾渡)」라는 시가 대표적이다.
강호의 기약을 저버린 지 오래 / 久負江湖約
풍진 속에서 어느덧 스무 해를 보냈네 / 風塵二十年
갈매기도 나를 비웃는 듯 / 白鷗如欲笑
끼룩대며 누대 앞으로 다가오네 / 故故近樓前
   조선 중종조(中宗朝)의 문신인 정수강(丁壽崗)의 이 시는 그런 면에서 차이가 있다. 갈매기를 대화의 직접적인 대상으로 설정하는 적극성을 보여준다.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하는 「백구사(白鷗詞)」라는 노래에서,

 

    백구야 펄펄 나지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로다.

 

   라고 한 것처럼,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는 자신을 몰라주고 놀라 피하는 갈매기에게 적극적인 변명을 하고 있다. ‘막위(莫謂)’의 패턴은 이런 설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수법이다.

 

* 본문의 봉창(篷窓)은 배에 달린 창문을 말하는 것으로, 배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권경열
글쓴이권경열(權敬烈)
한국고전번역원 성과평가실장

 

주요 역서
  • 『국역 국조상례보편』공역,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 『국역 매천집 3』, 한국고전번역원, 2010
  • 『국역 가례향의』, 국립중앙도서관, 2011
  • 『임장세고』, 한국국학진흥원, 2013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