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내 나이 일흔둘에 반은 빈집뿐인
산마을을 지날 때 늙은 중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더니
예닐곱 아이가 감자 한 알 쥐여주고
꾸벅, 절을 하고 돌아갔다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산마을을 벗어나서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나 했더니
그 아이에게 감자 한 알 받을 일이
남아서였다
오늘은 그 생각 속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
:조오현(1932~)('적멸을 위하여',
문학사상사,2012)
왜 사느냐고 묻거든, 그냥 웃겠단다.
못다 한 사랑 때문에,
죽지 못해 아니 살아 있으니
산다고도 한다.
시 속의 '늙은 중님'께서는
감자 한 알 받기 위해 사신단다.
예닐곱 아이가 일흔둘의
'늙은 중님'을 불러
감자 한 알을 쥐여주고는 꾸벅 절한다.
제 먹을 거 움켜쥐기에 다급할
예닐곱 나이에,
빈집 태반인 산마을이니 제 먹을 것도
부족할 텐데 지나가는 탁발승에게
감자 한 알을 건네는 아이.
그 예닐곱 아이가
보시와 공덕을, 자비와 측은지심을,
인연과 업을 알았을 것인가.
아이는 그 자체로 보살이고 부처다.
그러니 '늙은 중님'에게는
감자 한 알의 '한 소식'이었을것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랬거니,
그런 '한 소식' 앞에서
무슨 말을 앞세울 것인가,
잃을 수밖에. 감자 한 알의 '한 소식'을
한 번 더 받기 위해
일흔둘을 넘기고도 오늘도
무작정 걸음이랸다?
-시인. 이화여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