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유공권 (柳公權 778∼865)
중국 당(唐)나라 서예가. 자는 성현(誠懸). 경조화원현(京兆華原縣;지금의 陝西省) 출신. 806∼820년에 진사에 급제한 뒤 목종(穆宗)으로부터 필적을 인정받아 한림시서학사(翰林侍書學士)가 되었으며, 이어서 경종(敬宗)과 문종(文宗)을 섬겼다. 말년에는 태자태보(太子太保)에까지 이르렀으며 88세에 죽었다. 서예는 처음에 왕희지(王羲之)를 공부했으나 다시 구양순(歐陽詢)과 우세남(虞世南)을 공부하여 일가를 이루었으며, 중년 이후에는 안진경(顔眞卿)의 서풍을 점차 닮아갔다. 자주 <안류(顔柳)>라고 불리었는데, 안진경보다도 단정한 독특한 서체로 당시에 이미 이름을 날렸으며, 지금도 중국에서는 초학의 본으로 자주 이용된다. 목종으로부터 필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용필(用筆)은 마음에 달려 있고 마음이 바르면 붓도 바르다>고 답한 <필간지언(筆諫之言)>이 널리 알려져 있다. 《현비탑비(玄秘塔碑)》 《신책군기성덕비(神策軍紀聖德碑)》 《금강반야경(金剛般經)》 등이 있다
(2)조맹부 (趙孟頫 1254∼1322)
중국 원(元)나라 관리·서예가·화가. 우싱[吳興(오흥);浙江省(절강성) 湖州(호주)] 출신. 자는 자앙(子昻), 호는 송설도인(松雪道人). 조오흥(趙吳興)·조영록(趙榮祿)·조문민(趙文敏)이라고도 한다. 송(宋)나라 황족 출신이지만 원나라 쿠빌라이(世祖)의 부름을 받고, 이후 다섯 황제를 섬겼다. 특히 인종(仁宗)의 총애를 받고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영록대부(榮祿大夫)가 되었다. 서화시문(書畵詩文)에 출중한 원나라 제일의 문인으로, 그림은 산수(山水)·화조(花鳥)·죽석(竹石)·인마(人馬) 등을 모두 잘 그렸으며, 청록산수(靑綠山水)를 그려 당(唐)나라와 북송화풍을 본뜬 복고주의(復古主義)를 주장, 실천하는 등 원나라 산수화의 지도적 역할을 했다. 서(書)는 왕희지(王羲之)의 전형으로 복귀할 것을 주장하였고 진행초전(眞行草篆)의 각 서체에 모두 뛰어났으며, 그 서풍은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림에 《작화추색도권(鵲華秋色圖卷)》 《강촌어락도(江村漁樂圖)》, 서예작품에 《난정첩십삼발(蘭亭帖十三跋)》 《여중봉명본척독(與中峰明本尺牘)》 등이 있고, 문집에 《송설재문집(松雪齋文集)》이 있다. 가문에는 그림에 능한 사람이 많았으며, 아내인 관도승(管道昇)은 묵죽(墨竹)의 명인이었다.
(3) 안진경 (顔眞卿 709∼785)
'취미.예술 > 서예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추사체(秋史體) 에 대하여 (0) | 2008.07.24 |
---|---|
[스크랩] 안근례비/안진경 (0) | 2008.07.24 |
[스크랩] 서예란 무엇인가 (0) | 2008.07.24 |
[스크랩] 낙관(落款)은 도장이 아니다/우송 윤병조 (0) | 2008.07.24 |
[스크랩] 성리군서 발문 / 이황 (0) | 2008.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