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이론

[스크랩] ◆‘찍찍이’ 부모

충암 이영길 2015. 3. 4. 21:32

 

 

 

‘찍찍이’ 부모

 

 

 

앵무새에겐

말을 곧잘 따라 하는 것 말고도

사람과 닮은 구석이 또 있다.

 

날갯짓 배우기 무섭게

독립시키는 다른 새들에 비해

새끼의 응석을 오래 받아주는 게 그렇다.

 

앵무새 새끼는 마치 갓난아기처럼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채

부모가 물어다 주는 먹이로 배를 채운다.

 

생후 3~4개월이 지나

몸집이 부모만큼 커져도 좀체

나무 위 둥지를 떠나려 들지 않는다.

견디다 못해

부모가 먹이를 반으로 줄여야

마지못해

땅으로 뛰어내려 비행 연습을 한다.

 

하지만

혼자 먹이를 찾을 수 있게 돼도

새끼는 드러누워

아기 짓을 하기 일쑤다.

마음 약한 앵무새 부모는

차마 못 내치고 네 살이 되도록

다 큰 새끼를 먹여 살린다.



물론 자식에게

봉 노릇 하는 세월로 따지자면

사람 따를 짐승이 없다.

일평생

부모 등골을 빼먹는 자식도 허다하다.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어머니

그레이스도

쉬 철들지 않는 아들 때문에 어지간히

속을 썩었는지 이런 편지를 보냈다.

 

“모든 자식은

도무지 바닥 날 것 같지 않은

은행 계좌를 갖고 세상에 나간단다…

 

10대 무렵이면

하도 무분별하게 찾아 써서

몇 푼 안 남게 되지.

 

성인이 돼서도

은행이 계속 사랑과 연민을 베풀긴 하지만

이때쯤엔

스스로 계좌를 좀 채워줄 필요가 있단다.”

요즘 부모 중엔

자식을 하도 품에 끼고 돌아

도리어

독립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대학생·직장인이 된 뒤까지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기 예사다.

몇 년 전부터

자녀 주위를 끊임없이 맴도는 이들을

‘헬리콥터 부모’라 부르더니

최근엔

‘벨크로(Velcro·찍찍이) 부모’란

신조어마저 등장했다.

 

 

 

자식 곁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는 이들 때문에

얼마 전 입학 철을 맞은

미국 대학들이 골머리를 앓았다는 소식이다.

 

모어하우스 칼리지란 곳은

신입생들이 학교 안으로 행진한 뒤

교문을 잠가

부모들과 물리적으로 단절시키는

‘이별식’을 거행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부처에

딸자식을 특혜 취직시킨 의혹으로

낙마한 장관 역시 찍찍이 부모였지 싶다.

 

상식적으로

문제가 될 게 뻔한데도

옆에 끼고 있으려 한 것이나

결근 통보를 어머니가 대신했다는

얘기가 나도는 걸 보면 말이다.

과연

진짜 자식을 위한 길이

뭔지 곰곰 따져볼 일이다.

 

도움이 될 만한 시 한 편 소개한다.

‘광야로

내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고

’(정채봉, ‘콩씨네 자녀교육’)


by/신예리 논설위원

 

출처 : 우대받는 세대
글쓴이 : 地坪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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