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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必讀>`골빈당 엄마` 스토리

충암 이영길 2016. 9. 16. 13:13

'골빈당 엄마' 스토리

 

 

 

참으로 오래간만에

모 방송국 전속 어린이합창단의 노래를

들을수 있었다.


대형

심포니오케스라의 연주에 맞추어 부르는

그들의 '동요' 는

오래전

잃었던 것을 되찾는 기쁨이었다.


더구나

지금의 어린이들은 가창력이 뛰어났고

표정과 동작도 풍부해서 더 즐거웠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불러왔던 옛 동요들은

그들에 의해 다시 살아났고

그 곡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다시 깨닫게 해 줬다.

 

거기까지는

그렇게 좋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의 프로그램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창하는 아이들,

시를 낭송하는 아이들이

차례로

무대에 나와 마이크 앞에 섰는데,


그 아이들은

좀 전에 함께 합창을 부르던

활기찬 애들이 아니라

자기에게 전혀 걸맞지 않는

이상한 옷에 짓눌린 '인형들' 이었다.


 

 

그옷은,
애들이 입는

어린이의 옷이 아니라

어른의 옷을 축소한 스테이지 의상이었으며

그게 한두푼 짜리가 아닌,

고가의

무대의상임은 첫눈에 알아볼수 있었다.


어린 초등학교 학생이

가슴이 패이고

치마자락이 무대에 끌리는

기성가수의 의상에 하이힐까지 신었으니

그 동작이 어떠했을 것인가는

긴 설명이 필요없다.


평소에 입지않던,

전혀

생소하고 이상한 옷을 입은 애들은

관절이 굳어버린 환자처럼

무표정에
막대기 같이 걸었다.

 


그 이상한 옷들과

아이들의 불편한 동작은

그대로

비극적코미디 였으며

관중석 여기저기서

참지못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런 해괴한 일이 일어나는가.
돈은 있지만

골속이 텅텅비어있는

'속물근성의 엄마들' 때문이다.


아이들을

아이답게 키울줄 몰라

어른의 잣대를 갖다대는

무지몽매가 만들어낸

가슴아픈 코미디인 것이다.


자고로

속물들의 행동거지는 유행을 탄다.


[자기것] 이 없으니 남을 따라하고

거기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경쟁까지 발동한다.


우리의 불쌍한 어린이들이

학원에서 학원으로 쫒겨다니는

불상사가 그래서 생겨났다.


도대체

그 학원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풀러스요인이 되는것인가.
그걸 아는 엄마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천부, 적성을 먼저 찾는 일이다.
학원은

그 소중한 자질을 파괴하는 독소로 보면 된다.


독창하는 아이도,

시를 낭송하는 아이도

그냥

평소에 입던

이린이의 옷을 입고 나와야

아름답고 자연스럽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것은

언제나

변함없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애들에게

어른의 '탈' 을 덮어쓰게하는

무지와 몽매는

바른교육을 위해 반드시 척결되어야 한다.

 

그 아이들은,
동네 골목에서 장난치고,

싸우기도 하고, 넘너져서 다치기도 하고,

때로는

들과 산으로 달릴 수 있어야 한다.

얼마전 우리부부는

다섯살된 손녀를 데리고

강화도에 있는

[곤충박물관-032-934-9405] 에 간 일이 있다.

 


-할머니 이거봐 나비야 ! 정말 많다.
-할아버지 여기! 메뚜기야.
-할아버지 이 풍댕이 좀봐 ! 정말 크다.

한시간여 동안

손녀는

놀라운 세계에서 계속 탄성을 질렀고

그 목소리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어린 아이의 소리' 였다.


어른이 만들어 내는 가짜가 아니라

어린이 스스로가 뿜어내는

그 순수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어른은

단지 그런 환경으로 인도만 해 주면 된다.

그림을

아주 뛰어나게 잘 그리는 애가 있었다.
그 그림은 순수했고

대물에 대한 표현에서 대범했으며

물감을 칠하는 붓에 힘이 있었다.


미술에 대해

조곰만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아이가

천부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 차릴 수 있는 케이스다.

 


그런데,
그 아이가 엄마의 손에 이끌리어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터

어떤

'틀' 과 '경직성' 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얼마 후에는

그 놀랍던 어린이의 그림은 사라지고 말았다.


어른이, 미술선생이

아이의 그림에 손을 댔기 때문이다.


아이의

천부를 '지도' 한것이 아니라

어른의 그림으로 덧칠한 것이고,

그래야

상도타고 속물엄마의
탐욕도 채워줄수 있기 때문이었다.


상업주의가 왜 무서운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골빈당 엄마는

어떤 보물이 사라졌는지도 모르고 있다.


서양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온분이 들려준 얘기가 있다.


[그곳에서는 어떤 미술선생도

학생의 그림에 손을 대지 않는다.

단지

설명으로 이해시켜 본인이 스스로
발전해 나갈수 있도록 교습한다.]
정곡을 찌르는 지적이다.


어린이에 대한

우리사회의 모든 병폐는

단지

한마디로 압축 할수있다.
[애 어른을 만들지 말라.]



우리 손녀는

한달에 두번정도 우리집에 온다.
꼬마는

화가인 할머니와 함께 이젤을 펴놓고

수채화를 그린다.


우리는

또 손녀를 데리고 논길을 걸어보고

벼 이삭을 만져보게 하며

영글기 시작한 콩도 만져보게 한다.

나무에 달린

대추열매도 만져보게 하고

수로에서는

물속으로 돌도 던져보게 한다.


어떤때는

할머니와 함께 들꽃을 따고

그것으로

꽃다발도 만들어 보게한다.


돌아올때,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내가 업어준다.
그때,

나는 내 등을 통해

손녀의 만족해 하는 마음과

할아버지 등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전달돼 오는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며느리가 하는 말이있다.
[애를 할머니댁에 보내는 것이 보약이다.]

 

by/yorowon

                

 

 

출처 : 우대받는 세대
글쓴이 : 地坪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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