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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벌의 시 읽기- 일소일노(一笑一老):"우편"]-

충암 이영길 2017. 6. 13. 20:02

[정끝벌의 시 읽기- 일소일노(一笑一老):"우편"]-'조선일보 '2017.6.12(월)A30면 에서

[정끝벌의 시 읽기- 일소일노(一笑一老):"우편"]
[정끝벌의 시 읽기-일소일노(一笑一老)]

-"우 편"-


모든 것은 이미 배달되었다.
그것이 늙은 우편배달부들의 결론,
당신이 입을 벌려 말하기 전에 내가
모든 말을 들었던 것과 같이
같은 계절이 된 식물들
외로운 지폐를 세는 은행원들
먼 고백에 중독된 연인들
그 순간
누가 구름의 초인종을 눌렀다.
뜨거운 손과 발을 배달하고 있다.
우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는
바로 그 계절로
단 하나의 답장이 도착할 것이다.
조금 더 잔인한 방식으로
―이장욱(1968~ )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문학과지성사, 2016)


    늙은 집배원은 매일매일, 참으로 오랜 시간을, 이 세상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배달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말한다. 모든 것은 이미 배달되었다고. 초인종이 울리고, 정기적인 식사, 같은 목소리의 통화, 중독된 고백, 비슷한 슬픔, 잔인한 단 하나의 답장… 그렇게 나는 배달되었다, 고로 존재한다, 이 늙은 계절에. 나는 이미 쓰였고 나는 그것을 따라 산다, 그리고 죽을 것이다. 성경도 기록하고 있다, 단 한 권의 책은 이미 쓰였으며, 모든 말들은 다 발설되었다고. 모든 것은 예정되었고, 예정된 단 하나의 답장을 향해 간다.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일이다. 끝이 있어 다행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