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두일, 막바지 여름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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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나고 찜통더위가 한창인 요즘이다. 매년 이맘때면 더위를 피해서 하던 일을 잠시 접어두고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옛 선인들도 이때쯤의 날씨가 견디기 힘들었는지 음력 6월 15일 하루 동안 가까운 물가로 일종의 휴가를 다녀왔다. 이날을 유두일(流頭日) 혹은 유두절(流頭節)이라고 하였고 이날 술을 마시며 벌이는 잔치를 유두연(流頭宴)이라고 불렀다.
위는 유두연에 대해 읊은 시이다. 먼저 시에 달린 원주를 살펴보면, 유두연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잘못된 상식을 지적하고 있다. 하삭(河朔)의 피서음(避暑飮)이란, 후한(後漢) 말에 광록대부 유송(劉松)이 하삭(河朔)으로 원소(袁紹)의 군대를 위무하러 가서 원소의 자제들과 삼복더위에 술자리를 벌여 밤낮으로 술을 즐긴 고사에서 온 말인데, 무더운 여름철에 피서(避暑)하는 술자리를 뜻하는 말이다. 즉, 액막이 제사와는 애초에 관련이 없고 그저 더위를 피해서 술을 마시던 옛일을 본받은 것뿐인데, 당시 사람들은 유두일만 되면 반드시 액막이 제사를 지냈기에 한 말이다.
시의 본문 3구는 목욕일랑 얼른 마치고 빨리 와서 술이나 마시자는 말이다.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갓과 옷깃을 턴다는 굴원(屈原)의 옛말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4구의 ‘유상곡수(流觴曲水)’는 왕희지(王羲之)의 「난정기(蘭亭記)」에 나온 말로, 근사한 술자리를 얼른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선비 하나가 시원한 계곡에서 멱을 감다가 벗들의 성화에 못 이겨 물에서 나와 너럭바위에 앉아 술을 마시며 왁자지껄 떠드는 광경이 떠오른다.
그러나 명절이라고 다 같은 명절은 아니었나 보다. 가까운 사람들과 기꺼이 한때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다소 까다롭다 할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음은 이정암(李廷馣, 1541~1600)의 「유두일에 취해 읊다[流頭日醉吟]」이다.
남들 다 노는데 꼭 이런 사람들이 있다. 푹푹 찌는 더위 앞에 체면치레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물에 들어가서 목욕까지는 아니더라도 발만 담가도 잠시 더위를 잊을 수 있을 텐데, 술에 취했는지 더위를 먹었는지 혼곤한 잠에 빠져서는 저물녘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다음은 허적(許?, 1563~1640)의 「유두일에 다른 사람의 시에 차운하다[流頭日 次人韻]」이다.
본인이 피서를 위해 물가로 가지 않는 이유를 다소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지러이 흩어진 푸른 구름은 아직 젊고 머리숱이 풍성한 타인들을 은연중 비유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머리숱이 적은 데다 그나마도 온통 하얗게 새어버린 본인의 머리는 눈서리를 맞았기 때문에 차가운 계곡물을 부으면 더 차가워지니 굳이 끼얹지 않겠다고 한다. 재치와 유머가 돋보이는 시이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이번 여름도 막바지에 접어든다. 입추가 지나면 물도 시나브로 차가워질 터이다. 더 늦기 전에 가까운 계곡에 가서 물놀이하며 이 한때를 즐겨도 좋을 것이다. 그것이 이 더위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승사(勝事)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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