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쓰는 편지
( 충암 이영길)
나는 당신의 창가에 다가서서
사랑하는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애절하고 그리운 심정을
썼다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까맣게 지워진 새까만 내 마음을
당신의 창틈에 밀어 넣고 맙니다.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에 실어
비오는 날에는 빗줄기에 눈물을 섞어
눈 오는 날에는 뜨거운 마음 호호불어
당신의 창가에 편지를 보냅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편지를 쓰는 것은
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나이 들어 갈수록
애착과 사랑이 더 커지기에
당신의 창가에 편지를 씁니다.
잠에서 깨어 밝은 햇살을 보면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당신 창가에
사랑과 감사의 편지를 설렘으로 씁니다.
감
(충암 이영길)
산자락 휘감은 하얀 안개
떠난 계절 휘장으로 가리고
가는 설움에 슬픈 눈물 흘리는지
겨울비가 처연히 내린다.
오간사랑 속내 감추지 못하고
주황빛그리움으로 달아오른
함초롬히 젖은 고운 얼굴
앙상한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가을 흔적 씻어내는 빗줄기에
달콤한 사랑을 품고 맑게 웃고 있구나.
발가벗은 초겨울 감나무에
가을을 담아 애처로이 매달려
빗속에 젖는 모습 정겹구나.
겨울비 내리는 밤에
(충암 이영길)
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밤
겨울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먹장에 갇힌 별들의 서러움
눈물로 어둠 속을 적시는데
소슬한 빗소리 가슴 울려
외로운 마음의 골목길
그리움이 먼저 누워있다
이끼 낀 세월 뒤안길
따뜻한 눈길로 안아주던 사람아
빗물로 지척 이는 서글픈 밤
추억의 갈피를 열고
아린 가슴 헤집는가.
가슴에 옹이로 남은 상처
결 고운 무늬가 되어
사랑의 향기로 번진다.
겨울안개
(충암 이영길)
멀리서 은은히 들려오는 종소리
무명(無明)을 깨워 흔드는 육중한 울림
새벽은 부스스 잠에서 깨어
뿌옇게 동트는 여명(黎明)의 아침을 연다.
골골이 채워진 겨울안개
어슴새벽 내린 철적은 겨울비에
함초롬히 젖은 나목(裸木)의 속살을 가리고
눅눅한 대지를 휘덮고 있다
그림자도 숨어버린 孤獨한 발걸음
가슴 속에 켜켜이 쌓인 그리움이
眞紅빛 외로움으로 붉게 피어나면
안개 낀 언덕 혼돈의 미로를 걷는다.
눈 내리는 겨울날
하얀 눈꽃으로 피는 그리운 추억
사랑의 모닥불로 외로움 녹이면
매일 곳 없는 마음 머물지 못하고
무지(無智)의 안개 속을 헤맨다.
곡마단처럼 떠난 가을사랑
(충암 이영길)
하얀 갈대꽃 바람에 흩날리고
낙엽지운 나목의 앙상한 가지
파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가을은 곡마단처럼
울긋불긋 한바탕 향연을 벌리고
연민을 남긴 채 짐을 싸 떠났다
싸늘한 하늘가 맴도는 그리움
눈물마저 말라버린 슬픔을 담아
무심한 흰 구름은 두둥실 떠가고
엷은 햇살 비켜선 산그늘 아래
노란 잎 우수수 지운 은행나무가지엔
오밀조밀한 은행이 힘겹게 매달려 있다
떠돌이 계절에 사랑과 정을 주고
아린 이별을 하는 속절없는 마음
무위의 강에 떠가는 나뭇잎이어라
낙영산에 올라
(충암 이영길)
1.
고즈넉한 산사엔 정적이 흐르고
대웅전 양옆으로 석탑이 서있다
울울한 푸른 솔은 절을 감싸고
낙엽 쓰는 스님의 느긋한 빗질엔
시간도 잠시 멈춰 한적함이 묻어난다
자욱한 운무가 가까스로
시야를 열어주는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걸으며
치마폭처럼 펼쳐진 골짝 길을 토파
잘록한 안부에 올라선다
골짜기를 치달아 오른 싸늘한 바람
숨이 차서 나뭇가지에 걸쳐 흔들리고
박새는 날았다 앉으며 지저귀며
죽은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
고요한 산속 정적을 흔들어 깨운다
2.
가파른 능선 바위틈샛길을 오르노라니
암벽에 붙은 소나무 그림같이 다가서고
정상에 기묘한 바위 감탄이 절로 나고
운무에 가려 아름다운 풍광
조망할 수 없음이 못내 아쉽다
운무 속에 펼쳐진 암벽과 노송
기묘한 바위 새소리 바람소리
자연이 주는 넉넉한 풍취에 취하여
선계에 들어선 듯 발길이 멎는다
낙영산 넌 그림자마저 아까워서
운무로 속살 가리고 곧은 절개 지키는가.
무심한 운무야 깊은 뜻 알랴마는
무상한 일상에 가벼워진 마음 즐겁구나.
6-6
동백꽃 사랑
( 충암 이영길)
바닷가 매운바람
수줍게 피는 동백꽃
응고된 핏빛 그리움
애련으로 녹인 선혈
빨간 꽃잎에 토해내는가
푸른 별빛이 되고
기댈 언덕이 되고
기다리고 지켜보는
가슴 따뜻한 사랑
넌 순결한 사랑을 하나보다
동지팥죽
(충암 이영길)
보석 같은 햇살이 기우는 겨울날
그림자 앞세우고 골목길 돌아서니
노루 꼬리만 한 석양이 자취를 감춘다
저녁상에 차려진 동지팥죽
어릴 때 팥죽에 새알심 더 달라고 하면
나이 숫자대로 먹는 거라고 하시던 어머니
묽은 팥죽에 새알심 몇 개 빚어 넣고
달래시던 아픈 마음 이제야 헤아린다.
오늘이 낮이 가장 짧은 동지
음(陰)이 가장 성한 날
양성(陽性)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팥죽
붉은 팥죽으로 음귀(陰鬼)의 액땜하던
조상들의 지혜 지금 가늠이나 하는지
무너진 기억 속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
팥죽 한 그릇에 묻어나는 찡한 그리움
향기 잃은 마음의 정원 웃음꽃으로 핀다.
6-8
망향
(충암 이영길)
하늘은 고무락거리며 별을 쏟아놓고
동산은 꼴깍 초승달을 토하면
느티나무 앙상한 가지 쭈뼛이 일어선다.
차가운 겨울밤 귀에선 매미가 울고
어깨허리 통증 날 궂는 일기예보
손끝 발끝 서릿발내리는 나이 일흔 살
몸은 하나 둘 망가져 늙어가고
마음은 주름 펴는 보톡스 주사를 맞았는지
푸른 꿈 동심의 무지개를 찾아 헤맨다.
어슴푸레 푸른 달빛 파르르 떠는 겨울밤
차가운 외로움을 그리움으로 달래며
정다운 고향 꿈 가슴으로 포근히 안아본다
무엇이 그리 바쁘다고
(충암 이영길)
한해가 저무는 노을 속 돌아보면
세월의 그림자에 무너지는 신기루
숨차도록 몰아쳐 달려온 삶
욕망의 바다에 비친 허상이었다.
마음의 고향 찾아 고운 꿈 그려
엄마 젖가슴에 손도 묻어보고
개울가 웅덩이에 미역도 감아보고
파란 마음으로 웃으며 살면 되지
두런두런 주고받는 친구들 이야기
짜증 섞인 마누라 잔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들으면서
느긋하게 기다리면 오는 행복
비운 마음으로 천천히 살아도
세월이 저절로 몰고 가는 삶
무엇이 그리 바쁘다고
숨이 차도록 빨리 가려하는가
삶, 그 대본을 다시 쓴다
(충암 이영길)
하얗게 눈 덮인 숲속
잘록한 산등성이 너머
발그레한 햇살이 비쳐지면
가파른 계단 오르는 거친 숨소리
청솔가지 흔들며 날다람쥐 곡예부리고
발가벗은 나무는 바람결에
눈을 털며 잠에서 깨어난다.
누가 쓴 대본에 따라서
사랑하고 미워하며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삶의 연출에 울고 웃는가
삶을 이끄는 구성은 누가 하는지
신이 하는 것일까
운명이 하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일까
자신의 마음이 쓰는 대본에 따라
삶을 연출하는 것이리니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으로
가볍고 쉬운 삶의 대본을 쓰리라
산 아래 골짝에는 연무가 깔리고
말쑥하고 단아한 連峰
시리도록 파란 하늘 맞닿아
아름다운 水墨畵를 펼쳐 놓았다
아! 大自然의 파노라마
가슴에 밀려오는 환희의 물결
蒼空을 향해 외친다
난 自由人이라고....
6-11
경인년 새해아침
( 충암 이영길)
산머리 엷은 운무를 헤치고
불끈 솟아오르는 붉은 불덩이
경건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지고
저마다 한해의 소원을 비는 해맞이
이렇게 경인년 새해는 밝았다
정사역천(精思力踐)무괴아심(無愧我心)
깊이 생각하고
힘을 다해 실천하고
내 생각과 행동이
마음에 부끄럼 없이 살리라
새해 휘호를 쓰면서 다짐한다.
새해에는 갈등과 반목의 골
이해와 사랑으로 메우고
포용하고 양보하는 겸양으로
화합하고 단결하는 대한민국
어둡고 그늘진 곳이 없는
따뜻한 대한민국이 되게 하소서
남과 북 소통과 협력의 활로를 열고
통일을 향한 발전과 웅비를 이루어
호랑이의 포효(咆哮)하는 기상으로
세계를 영도하는 자랑스러운 조국
위대한 한민족의 긍지를 드높여
역사에 빛나는 한해가 되게 하소서
6-12
送年 頌
(충암 이영길)
송아지 등 너머로 불끈 솟은 해
밝아온 己丑 年 새해아침
마음 가다듬어 농적기우(弄笛騎牛)
휘호를 써 소타고 피리 부는
목가적 낭만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네.
얽히고설킨 삶의 얼개 풀릴수록
짧은 기쁨 뒤의 긴 고통과 슬픔
고단하게 조여 오는 삶의 올가미
기억 속에 쌓이는 나이테가 되고
연두 휘호는 망각의 그림자 되었다
경건하게 한해를 돌아보며
아픔과 슬픔은 인내와 용기를
주변의 어려움엔 위로와 격려를
기쁨과 행복은 삼감과 신중을
지혜로 주고 가는 한해였나니
욕심 채우려 발버둥 치지 말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열린 가슴을 주고 가는 기축 년
노을 속에 작별의 손짓을 하며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내주련다
아름다운 세상
(㳘岩 李榮吉)
맑고 아름다운 세상은
탐욕 없는 맑은 눈으로
아름답게 바라보는
향기로 피어나는 세상이다
천진한 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
사랑하는 연인의 발그레 수줍은 미소
들판을 바라보는 농부의 눈길에서
아름다운 세상은 피어난다.
낙원도 지옥도 마음으로 짓고
지은 업보대로 얽혀 사는 인생
탐욕을 버리고 정갈한 마음
사랑의 열쇠로 아름다운 세상을 연다
삶의 곡선 따라 그리는 수채화처럼
아픔과 괴로움 행복 속에 접어두고
슬픔과 연민 희망의 강물에 흘려
아름다운세상 살아가는 인생이어라
어설픈 여로
(충암 이영길)
기차를 타고 바라보는 창밖
삭막하게 펼쳐진 텅 빈 들판
간간이 보이는 파릇한 보리밭
푸른 생명의 빛깔로 웃어준다
쓸쓸한 간이역
멈춰선 기차에서 튕겨나듯
내려선 플랫폼에 홀로 서있고
기차는 기적을 여운으로 남기고 떠난다.
아무도 없는 대합실을
쫓기듯 빠져나와 언덕에 올라서면
저 멀리 산모롱이 돌아
어느새 발길은 고향마을 향한다.
그리운 얼굴 떠오르고
망연한 상념 감회에 젖어들어
웃으며 반기는 반백의 친구 손잡고
설렘과 서글픔에 망연해진다
친구여!
해후는 행복이러니
행운유수(行雲流水)와 같은
허심(虛心)의 여백(餘白)으로 즐겨 보세나
운해(雲海)
(㳘岩 李榮吉)
들판과 산골짝, 강과 호수
하얗게 메우고 펼쳐진 구름바다
간신히 얼굴 내민 산봉우리
운해(雲海)에 솟아난 외로운 섬이 되었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파도
멀리 하늘과 맞닿은 사이로
얇은 겨울햇살 수줍게 내려앉은 장관(壯觀)
아름답고 신비(神秘)한 선계(仙界)가 예아닌가
무지개 카펫 펴고 천마(天馬)를 휘몰아
세월을 되돌려 지나온 자취 따라
햇살 줄기로 사르르 피는 추억
자유의 날개로 휘저어 날아본다
마음은 벌써 동심에 가 있고
여로(旅路)갈피갈피 질퍽이는 향수(鄕愁)
애타는 그리움의 파도는 꿈을 삼켜
하얀 현실을 거품으로 뱉어낸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흩어지는 안개구름
운해 속에 잠겼던 세상 나타나고
想念의 바다 헤맨 비몽사몽(非夢似夢)
한 자락의 백일몽(白日夢)
2009.11.18.
남산에서 운해를 바라보고
통도사에서
(㳘岩 李榮吉)
하얀 연무 산허리에 감은 영취산
수려한 산수 아름다운 경승지
불보명찰(佛寶名刹) 통도사(通度寺)
천왕문 들어서니 대 가람의 위용
무심한 나그네 압도하며 다가선다
금강계단 불단 앞에 경배하고
합장하고 탑돌이 하는 불자들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비는지
자장율사 설법 상상으로 그리며
경건한 기원을 멍하니 바라본다
스님은 자비롭게 공양을 권하는데
아상(我相)의 집착에서 헤매는 몽매(蒙昧)한 마음
한 점 단청의 염력(念力)에도 범접 못하고
힘없이 돌아서는 발걸음만 무거워라
찌푸린 하늘 후드득후드득 비를 뿌린다
2009.11.10. 통도사에서
평화
(㳘岩 李榮吉)
평화(平和)
서로 다른 조건에서 갈등의 거리를 좁혀
일등도 꼴지도 없는 기쁨으로 끝내고
겸양의 그늘에 다툼과 갈등을 묻고
모두승자가 되어 평온과 화목의 영토에
사랑으로 승리의 깃발 꽂는 경기
향기로운 이별
(㳘岩 李榮吉)
황금낙엽에 머무는 정념
작고 가는 낙엽송 이파리
가슴으로 금빛사랑 사르며
향기로 이별을 노래하며 우수수 진다
따뜻했던 사랑만 기억하고
미련과 원망 가슴으로 사르며
서럽고 아픈 마음 펴고 웃는
향기로운 이별 아름다우리라
벽 없는 방에는 그리움
천정 없는 방에는 외로움들이어
바람에 그리움 실어 보내고
별빛에 외로움 달래는 맑음 삶 살다
마음마당 사랑의 사립문 나서는
자유로운 영혼의 향기로운 이별
노을빛 아름다운 황혼의 꿈이어라
2009.11.13 밤에
混沌
(㳘岩 李榮吉)
순진하다는 말 바보 같다는 말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말
사람 나고 돈 났다는 말
손해보고 판다는 상인의 말
죽어야 한다는 노인의 말
국민의 공복이라는 의원님 말
새치기 하면서 질서 지키자는 말
애국애족을 부르짖는 선동가의 말
선거 때 급조해 내거는 허황된 공약
언어의 해석에 혼돈된 세상
진실과 가식의 모호함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갈피잡지 못하는 우둔한 존재
안개 속 같은 혼미한 정신으로
혼돈의 갈피를 잡고 방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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