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作 노트

시작노트 3. 과수원 길

충암 이영길 2010. 8. 29. 23:17

과수원 길에서 / 충암 이영길

 

무성하던 복숭아나무 가지가

싹둑싹둑 팔이며 손가락을 잘리듯

잘리어 앙상하다

 

듬성한 가지에 보송한 꽃눈

해맑은 웃음을 웃고 있으니

한 뿌리 한 나무에서도

적자생존의 법칙은 냉엄하다

 

땅에 퇴비를 펴고

햇볕 들고 바람 지나게 한

순박한 농부의 손길

살바람에 주춤한 봄을 앞질러

풍년의 희망자락을 깔았다

 

풍성한 말잔치에 신물 나는 세상

대지에 입 맞추고 사랑하는

꾸밈없는 마음

하늘하늘 아지랑이로 피어오른다.

 

 

달빛 창가에서 / 충암 이영길

 

푸른 별빛은 슬픈 눈으로

떨어지는 꽃잎을 지켜보고

바람은 달빛 그림자 너머로 꽃비를 뿌린다.

 

고통과 신음이 새어나는 어둑한 병실

침잠된 영혼의 늪지에서

삶을 향한 애타는 기원이

무거운 침묵으로 가라않는 밤이다

 

병상을 지키며 잠 못 이루고

아파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쾌유를 기원하는 마음을 모아

달빛 스며드는 창가에 다가선다.

 

고목 나뭇가지에 걸린 둥근 달

하얗게 이지러진 얼굴로 흘겨보고

휘늘어진 벚꽃은 달빛에 흰데

목련은 꽃잎을 사뿐히 날리고 있다

 

 

 

 

 

정이 흐르는 솟대거리 / 충암 이영길

 

1

아름다운 호수 굽이도는 마을 어귀

하늘을 향해 우뚝 선 솟대

저 깊은 토착의 뿌리에서 솟구치는

간절한 소망과 사랑이 서리서리 감겨

마을의 수호신으로 풍농의 염원을 품고

하늘을 향해 나무새는 앉아있다

 

2

구비 구비 감도는 푸른 호반 칠십 리길

오가는 나그네 정겨운 눈길 받으며

하늘과 땅과 사람들의 소망을 연결하는 솟대

나뭇가지에 사랑과 정성으로 혼을 불어넣어

생동하는 모습으로 장대위에 올라앉은 새는

하늘을 향한 소망을 품고 비상을 꿈꾸는가.

 

3

듬성듬성 세워진 거릿대의 염원의 숨결

호수의 물결을 흔들고 하늘을 여는가.

말없이 서있는 신간(神竿)위의 나무새는

침묵의 시간을 거슬러 전설과 역사를 품고

문화를 어우르는 상징으로

고운사랑 피어나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어라

 

*거릿대 ~ 길거리에 세운 솟대. 솟대의 세운 위치에 따라 거릿대. 갯대 등으로 구분함

 

 

 

만남의 여운 / 충암 이영길

어둡고 지루한 회색의 터널을 지나

눈부신 햇살에 환호하며 손잡은

첫 만남은 소중한 인연이었다.

가슴에 고통의 옹이 하나씩 박힌

아픈 흔적을 공유한 우리는 다시

만남의 기쁨에 환한 웃음으로 얼싸안았다

 

토파 오른 고려산 진달래 군락

온 산을 붉게 수놓은 아름다움에

해맑은 웃음으로 세진을 털어낸다

고갯마루 목로에서 막걸리 목축이며

허허로운 웃음에 묻어나는 사람냄새

흐르는 세월에 마음의 짐을 덜어낸

삶의 여유에 담긴 향기여라

 

강화유적 역사의 상흔이

애잔하게 마음을 누르는데

곱게 피어나는 꽃들은 화사하게 웃고 있다

아름다운 계절 만남의 여정에서

소중한 인연의 진액으로 마음을 이어

짧은 만남 긴 여운 남기며

다시 만남을 기약하며 돌아선다.

 

 

모란은 다시 피는데 / 충암 이영길

 

자주색깔 고운 꽃잎 수줍게 열고

우아한 자태로 웃고 있는 모란꽃

잔인한 4월 선혈로 울부짖은

핏빛 역사의 혼을 머금고 피었는가.

 

못다 피고 꺾인 꽃 한 송이 가슴에 품고

묘비명 앞에 소리 없이 통곡하던 어머니

피맺힌 사랑은 붉은 진달래꽃으로 피어나

두견새 울음으로 진혼을 달래며 머무는지

모란은 다시 곱게 피는데

임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와 민주의 꽃나무 시궁창에 뿌리 상하고

이기의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가.

 

새 흙을 붓고 토양을 기름지게 하라

선열이 피 흘려 심은 나무 무성하게 자라

자유와 민주의 꽃이여 아름답게 피어나라

역사가 숨 쉬는 4월의 대지에 무릎 꿇고

숙연한 마음으로 다시 기원해 본다.

 

 

 

 

목련이 피는 밤 / 㳘岩 李榮吉

 

엷은 달빛이 새어드는 창문에

실루엣으로 흔들리는 그림자

 

겨울의 연민

꽃샘추위로 찬바람 부는 밤

목련은 하얀 꽃을 피우고 있다

 

달빛으로 빚은 하얀 미소

그 순결하고 고절한 기개

 

하얀 손끝으로 어둠을 녹이고

사랑으로 여명을 빚는 천수관음

자애로운 자재보살의 화신인가

 

하얀 목련의 속삭임은

사바의 차가운 밤을 밟고 지나고

어둠에 갇혔던 시공

실타래로 엮여 올라와 새 모습 드러낸다.

 

목련이 피는 밤은

삶의 갈피 방울방울 맺힌

그리움과 연민 수많은 상념을

망각의 지우개로 하얗게 지우고 간다.

 

 

 

 

 

봄 이야기 / 충암 이영길

 

(시간의 갈피에서)

 

흘러간 시간의 갈피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면

바위틈새를 스쳐 흐르는

맑은 개울물엔 알밴 가재 기어 나오고

맑은 물에 발 담그면

중고기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맨손으로 움켜보면 손가락 사이

사르르 빠져 나가고

구경하던 계집아이 까르르 웃어댄다.

물 한 움큼 끼얹으며 심통을 떨면

살짝 눈 흘기며 돌아선

토라진 옆모습이 무척 고왔다

 

그날도 성인산 봉우리엔 흰 구름 두둥실

양지바른 산비탈엔 꿩이 울어대고 있었다.

 

매화가지에 살짝 앉은 봄기운

작은 꽃망울 건드려 하얀 웃음 배시시 터뜨리면

저 멀리 지나간 시간에 갇힌 기억을

사리사리 풀어내고 있는지

 

 

 

사랑의 불씨 / 충암 이영길

 

하늘은 잔뜩 찌푸린 험상궂은 얼굴로

슬픈 눈물을 하염없이 쏟고 있는데

모든 걸 내어준 텅 빈 어머니 가슴처럼

검은 들판에는 뿌연 연무가 서려있다

 

철겨운 겨울비에 마음도 질퍽이고

상념의 바다 일렁이는 기억의 너울엔

엷은 불빛에 반사되어 아스라이 보이는

때 묻고 빛바랜 추억의 그림 한 폭

 

꽁꽁 언 손잡아 화롯가로 다가가

부젓가락으로 살포시 돋우면

하얀 재속에서 얼굴 내미는 빨간 불씨

따뜻했던 할머니손길 못내 그립고

 

날씨보다 마음이 시리고 움츠러드는 날

숯처럼 까맣게 잊혀 진 기억의 어둠속에서

그리움에 불붙어 피어나는 회상의 잔영은

세파에 언 마음을 녹이는 사랑의 불씨여라

 

 

 

 

 

산행의 여운 / 충암 이영길

 

 

양지바른 산비탈 생강나무

노란 꽃망울 터뜨려 배시시 웃고

산골짝엔 빛바랜 얼음이 남아

겨울을 그리며 눈물로 녹아내린다.

 

메마른 일상 훌훌 접고 가볍게 떠나

토파 오르는 산길엔 웃음꽃 피어나고

봄바람 쐬며 걷는 정다운 동행

인연의 징검다리를 놓고 있다

 

시원한 바람은 노송을 흔들고

문장대 위용은 가슴을 압도하는데

신선이 된 듯 감탄을 자아내며

세속을 초연한양 오만해지는 심상

마음을 비운다.

 

세진을 털어내니

물소리 새 소리 개구리 소리

청아한 봄의 화음으로 울려오고

구름 걷힌 하늘엔 햇살이 웃고 있다

 

 

 

 

살다보면 / 충암 이영길

 

문득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이런저런 구실로 무심히 지나온 세월

미움도 그리움이 되어 가슴 시리게 하고

연민의 창문에 아쉬움의 그림자로 남는 사람

문득문득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삶의 갈피에서 오롯이 살아남아

창문을 두드리는 하얀 달빛소리에

으스러지도록 안아보는 사랑의 추억

 

문득문득 잊히지 않는 아픔이 있다

마음에 옹이처럼 박힌 상처가

기억의 긁적임으로 도질 때마다

참회의 연고를 발라도 아물지 않는 상처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의 환영은

송이송이 피어나는 상념의 꽃에

훨훨 날아 찾아드는 나비가 되어

지친 삶의 여정에 펼치는 영혼의 춤사위여라

 

 

 

 

 

 

새재 길 / 㳘岩 李榮吉

 

길을 걷는다.

지나간 사람들의 한과 사연이

세월의 갈피에 낙엽으로 뒹굴고

역사의 거친 숨결이

시냇물 아우성으로 자자드는 새재길

 

하얀 털 보송한 버들강아지

곰실대는 간지럼에 버드나무 몸 비틀고

넓은 암반위로 흐르는 맑은 물 굽이도는

기암 절경 울창한 숲 사이로

마사 흙 부드러운 길을 걷는다.

 

원(院)터 교귀정(交龜亭) 관문(關門) 책 바위

양반들의 시비(詩碑)와 흔적은 널려있는데

서민들의 많고 많은 애환은

새재아리랑 한 곡조에 흘러가고

응달진 골짜기엔 얼음이 남아

겨울의 잔영을 아쉬운 듯 잡고 있고

아름다운 봄날은 흘러가고 인생도 저문다

 

 

 

 

설날 그 푸른 그리움 / 충암 이영길

 

핏기 잃은 초승달은 지친 듯이 정자나무에 걸려있고

푸른 은하는 별빛을 모아 중천을 흐르는데

바람은 쭈뼛이 손을 들어 진을 친 울타리 사이를 스쳐

사랑방 문풍지를 흔들어 대면

어둠은 검은 외투를 걸친 채

다가서는 여명에 뒷걸음 치고

할아버지 잦은 기침 부싯돌에 이는 불똥

아침에 솟는 태양에 불을 붙였는지

향일봉은 붉은 해를 토해내고

차례상 물리기 바쁘게 설빔 옷 차려입고

집집마다 몰려가서 세배하고

세뱃돈 자랑에 웃음꽃 피워

닷 마지기 앞 논배미 얼음판

북적대며 얼음지치던 친구들

팽이치고 제기차고 널도 뛰고

신나는 풍물놀이 흥겨운 춤판

추위도 아랑곳없던 신나던 설

 

설날 그 푸른 그리움은 전설처럼 기억에 맴도는데

이젠 정겨운 모습 사라지고

지금 자라는 아이들은

먼 훗날 설날을 어떤 추억으로 떠올리게 될까

 

 

 

 

 

 

얼음낚시 소묘 / 충암 이영길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

독한 한기를 하얗게 뿜으며

찬바람에 찡하고 비명을 지른다.

선정삼매에 든 수도승처럼

미동도 없이 참선하듯 앉아서

얼음구멍에 찌만 바라보며

기다림으로 시간을 덮고 있다

 

차디찬 세파의 살얼음판

목줄을 조이는 시퍼런 칼날

번득이는 섬광에 자지러지는 삶

미네르바의 외침에 환호하고

드러나는 허상에 무너지는 자괴감

자중의 중심 추가 기운 비틀거림이라

 

얼음판도 세상도 춥고 떨린다.

찌가 움직이고 걷어 올리는 낚싯줄엔

작은 빙어가 줄줄 달려 나온다

성에가 하얗게 낀 코털 사이로

붉은 입술엔 환한 웃음이 번지고

엷은 겨울 햇살도 살포시 따라 웃어준다

 

 

 

연초록 봄 웃음 / 충암 이영길

 

소복소복 쌓였던 눈이

살며시 스며드는 봄기운에

스르르 녹아내린 담장 밑

아직 음습하고 냉기서린 흙을 들추고

연초록 어린 이파리 고개를 내민다.

 

아직 겨울의 잔영이 남아

찬바람에 서릿발 매서운데

여린 이파리 추위를 어찌 견딜까

땅속에 봄기별이 어느새 전해져

진득이 참지 못하고 서둘러 나왔을까

 

한 뿌리 꽃과 잎이 이별의 인연이라

기다림에 지쳐 무너진 육신

영혼은 연민의 늪 지척이며 헤매다

눈 녹아 촉촉이 젖어드는 봄소식에

그리움 사무쳐서 얼굴 내민 상사초라

봄소식 전하는 연초록 여린 생명

예쁘고 대견함에 눈길이 닿아

강인한 생명력에 지는 애상의 그늘은

사색의 향기에 젖어든 사랑의 그림자

봄은 화사한 햇살에 미소를 짓고 있다.

 

 

작은 행복 하나 / 충암 이영길

 

눈썹 같은 초승달은 서산에 기울고

시린 별빛이 짜릿하게 쏟아지는 밤

조는 듯 흩어지는 가로등 불빛에

인적 끊긴 골목길 전봇대 그림자가

외롭게 길게 누워 잠들어 있다

 

하루를 비틀댄 여정의 종착역에서

스르르 덮여오는 까만 외로움

잠 못 이루고 밤길 거닐며

자책으로 옥죈 가슴을 열면

용서와 관용으로 풀려나는 해방감

 

어두운 가슴에 불을 밝히면

남 몰래 한 방울씩 흘린 눈물로

원망과 미움을 지우고 뿌리내려

오롯이 싹터 자라는 사랑과 희망

낮아진 마음속에 안기는 행복이어라

 

천국으로 보내는 편지 / 충암 이영길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슬픈 연민이

혼돈의 마음 밭에 피어난 꽃이런가.

진홍빛 향기로 가슴 아리게 하는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국립묘지 아들이 묻힌 묘비 앞으로

17년의 세월 차마 가슴에 묻지 못하고

애틋한 사랑이 담긴 편지를 붙이며

눈물을 삼키고 위안을 삼는 부모의 심정

 

핏빛 그리움 쌓이고 고여 썩은 가슴에서

천국의 아들은 한 줄기 연꽃으로 피어나

산자와 죽은 자의 영혼이 교감하는 미소로

진한 사랑의 향기를 풍겨주고 있음이라

 

받아볼 수 없는 편지를 써서 붙이는 부모

배달하는 집배원 묘비 앞에서 읽어주고

정성스레 모아놓는 직원들이 엮어내는

따뜻한 정이 넘치는 동화 같은 이야기

 

차가운 세파에 얼어붙은 가슴을

녹여주는 훈훈한 봄바람이어라

메마른 마음 적셔주는 감동의 빗줄기여라

 

 

 

 

 

(주)2009.1.28KBS 2TV 뉴스 왕

천국으로 보내는 편지의 비밀 프로의

대전국립현충원 전새한 병사의 묘비로

17년째 발신인 없는 편지의 사연을 시청하고

 

천등산을 올라 / 충암 이영길

 

새해 첫날 산을 오른다.

가파르고 힘든 산길을 오르노라면

매운바람이 볼을 에고 손끝이 시리다

자작나무 하얀 향기 내뿜는 숲길

산위에 파란 하늘이 티 없이 맑고

 

한 봉우리 올라서면

또 한 봉우리가 나타나고

터벅터벅 지친 걸음으로

가쁜 숨 몰아쉬며 올라선 천등산

 

확 트인 시계에 내려다보이는 세상

하늘에 오른 듯 시원한 가슴

파란하늘이 활짝 웃으며

보드라운 햇살로 따뜻이 보듬는다.

 

맑고 파란 하늘에 동그란 희망을 그리고

분홍빛깔소원을 색칠한다.

모두가 건강하고 풍요로우며

행복하고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향기 나는 세상이기를

 

 

 

 

春雪에 피는 해당화 / 충암 이영길

 

험상궂게 찌푸린 얼굴

하늘이 철겨운 눈발을 날리는 날

 

스산한 마음의 벼랑아래

연분홍 고운 자태 화사한 옷깃 날리며

차가운 슬픔을 망울진 웃음에 감추고

사랑을 향기로 간직한 모습이다

 

달빛 그을림에 찌든 희미한 추억

그리움에 비치는 무지개다리를 건너

불러도 대답 없이 멀어져 가는

마음에 스쳐가는 사랑의 환영인가

 

잉걸불 분노를 인고의 재로 덮으며

모진 인연을 사랑으로 담아내어

맑은 웃음 상큼한 향기로 행복을 주는

여리지만 강인한 춘설에 피는 해당화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