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作 노트

시작노트 1. 그리움 묶어놓고

충암 이영길 2010. 8. 28. 10:26

그리움 묶어놓고 / 충암 이영길

 

창밖에 흐드러진 꽃들이 반겨 웃으며

살랑대는 바람에 향기실어 보내는데

먼저 핀 꽃잎은

설음을 머금고 떨어진다.

 

기다림을 모르는 시간은 계절을 몰아쳐

저만큼 밀려가는 봄은

텅 빈 가슴에 그리움 묶어놓고

생명의 살점을 베어가고 있다

 

봄이 가고 있는 창가에서

사색의 늪 고요한 명상의 물결에

마음 헹구어 욕망의 때를 씻으면

청정한 바람에 맑아지는 정신

 

마음의 요동에 비치는 허상에

상념의 초점이 맞춰진 편견을

마음이 구르며 애태우는구나.

본연은 그대로 본연인 것을...

 

 

 

 

기다림의 그늘에 / 충암 이영길

 

기다림의 시간은 길고

신호등 앞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는

몇 초의 시간은

지루하고 길게 느껴지는데

우리 함께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 못내 아쉽구려.

친구여!

바쁜 삶 속에서

몇 순배의 술잔을 나누며

우정을 나눈 적도 그리 많지 않았네.

헤어짐 뒤에 달라붙은 기다림은

겁의 시간을 지난 듯 가몰 하고

마음은 곁으로 줄달음치는데

발자국 소리는 더 멀어 지네

짙게 드리운 기다림의 그늘에

그리움을 심으며

마음의 빈터에 우정의 집을 짓고

기다림의 창문을 열어 둠은

봄 아지랑이 한 아름 안고

그대 올 것을 믿기 때문일세.

 

 

마음에 물든 낙조 / 충암 이영길

 

하루의 여정이 저물면

이젠 인생의 여정도 저물어 감을 안다

태백의 등줄기 미시령은 뻥 뚫린 구멍으로

차량을 꾸역꾸역 삼키고 토해내고

석양은 하루의 여정에 지친 듯

고갯마루에 걸친 채 얼굴을 붉힌다.

 

기암괴석 기묘한 울산바위 장엄한 모습

낙조에 곱게 물드는 설악의 품이 아쉬워

길가 잔디밭에 둘러 앉아 술잔을 따른다.

꾸불꾸불 돌고 돌아 오르던 미시령 고갯길

이젠 지나온 인생길처럼 추억에 담아두고

가슴속 회포를 술잔에 타서 마신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마음으로 붙잡고

주고받는 술잔에 취흥은 젊음을 그리는데

어둠이 내려앉는 황혼의 홍조 띤 얼굴엔

세월이 파낸 주름을 펴고 웃음을 담아

서로 마음과 정을 섞어 나눌 벗이 있음에

겸허히 서로 감사하고 기뻐했다.

 

빨갛게 달아오르는 마음의 낙조에

흩어져 있는 아쉬움과 연민을 남겨두고

미시령 터널을 지나 오늘의 여정을 어둠에 묻는다.

 

 

 

 

 

落花遺憾 / 충암 이영길

 

하얗게 핀 벚꽃이 터널을 이룬 湖畔길

바람이 나무를 흔들면

하얀 꽃잎이 눈처럼 흩날리고

꽃 속의 벌들의 놀란 날갯짓에

윙윙 연주가 울려나는 꽃길의 향연

아름다움은 짧은 순간에 지나고

아쉬움의 더께는 두텁게 쌓이는 것

 

바람결에 실려 오는 꽃향기에

가슴 깊이 저며 드는 그리움은

망각의 지우개로 못다 지운 기억인가

창공으로 흩날리는 상념의 편린은

봄 햇살에 반짝이는 보석 같은

젊은 날의 황홀한 추억의 조각들

아쉬움의 물결에 밀려 마음 가에 닿았다

 

즐겁고 아름다운 시간은 살같이 지나고

아쉬움과 미련은 세월에 쌓여

그리움을 잡고 사는 게 인생 아닐까

꽃길을 걸으며 향기를 맡으며

마음 덜고 사색의 여유를 누리는

지금 이 순간들이 마냔 행복한 삶이리라

나이 들어 앞으로 살아갈 날들보다는....

 

 

落花遺憾 / 충암 이영길

 

하얗게 핀 벚꽃이 터널을 이룬 湖畔길

바람이 나무를 흔들면

하얀 꽃잎이 눈처럼 흩날리고

꽃 속의 벌들의 놀란 날갯짓에

윙윙 연주가 울려나는 꽃길의 향연

아름다움은 짧은 순간에 지나고

아쉬움의 더께는 두텁게 쌓이는 것

 

바람결에 실려 오는 꽃향기에

가슴 깊이 저며 드는 그리움은

망각의 지우개로 못다 지운 기억인가

창공으로 흩날리는 상념의 편린은

봄 햇살에 반짝이는 보석 같은

젊은 날의 황홀한 추억의 조각들

아쉬움의 물결에 밀려 마음 가에 닿았다

 

즐겁고 아름다운 시간은 살같이 지나고

아쉬움과 미련은 세월에 쌓여

그리움을 잡고 사는 게 인생 아닐까

꽃길을 걸으며 향기를 맡으며

마음 덜고 사색의 여유를 누리는

지금 이 순간들이 마냔 행복한 삶이리라

나이 들어 앞으로 살아갈 날들보다는....

 

 

두견화는 피는데 / 충암 이영길

 

양지바른 산비탈 두견화 곱게 피어

따사로운 봄볕에 해맑게 웃고

심술궂은 꽃샘바람 성난 숨결에

가녀린 꽃잎은 바르르 떨고 있다

 

굽이굽이 흘러간 세월 저편

두견화 피어나 온산이 빨갛게 물들면

농번기 앞둔 흥겨운 화전놀이에

남녀노소 모두 모여 동네잔치 벌어지고

 

두견화 곱게 펴서 구워내는 화전(花煎)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헛돌고

잘 익은 농주 몇 순배 곁들이면

농악가락에 맞춰 흥겨운 춤판이 벌어지고

 

산등성이 소담스레 핀 참꽃 꺾노라면

꽃 문둥이가 애들 잡아 간다고

겁주는 말에 놀라 뛰어 내려오고

한 아름 꺾은 꽃을 따먹던 추억의 그 시절

 

이젠 전설처럼 까마득한 옛 이야기 되고

애틋한 그리움의 물결이

파도처럼 마음에 밀려들어

외로움 붙잡고 무상한 세월 돌아본다.

 

인생의 변경에 선 시리도록 외로운 영혼은

곱게 핀 두견화 꽃에 想念을 멈추고

추억의 그림자에 깃든 기억의 향기에

가냘픈 위로를 매어달고 있다

 

2008. 4. 1.

 

마음의 창가에 비추는 봄볕 / 충암 이영길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처절한 싸움이 벌어지는 중환자실

세상과 막힌 막막한 공간

신음과 절규의 비창이 배어나는

암울한 어둠 속에서 질긴 애착이

삶의 줄을 잡고 있다

 

하루 세 번 병실의 문이 열리고

애타는 가족이 찾아들어

각기 다른 표정으로 바라보며

살아 있음에 안도와 기원을 안고

힘없는 걸음으로 돌아 나오면

세상과의 벽을 쌓는 문이 닫힌다.

 

삶이 까맣게 지워지는

가몰한 시간 너머로

영혼은 갈망의 촛불을 밝히고

창가로 스며드는 따뜻한 봄볕은

희망의 온기로 살며시 다가와

마음의 창가에서 삶의 빛깔을 그린다.

 

2008. 2. 24. 모든 환우의 쾌유를 빌면서

 

 

모란꽃 속삭임 / 충암 이영길

 

간밤 비바람에 떨어진 꽃잎

쓸어내기 애처로워 망설여진다.

며칠은 더 볼 수 있었을 꽃들인데

낙화되어 뒹굴고 있는 모습 안쓰럽다

내 모습 처연해 보였나

향기로 말을 걸어오는 모란꽃

빨갛고 탐스럽던 꽃봉오리가

어느새 활짝 피어나 환하게 웃고 있다

그래 꽃은 지는 것만이 아니고

새로운 꽃이 피어나는 거지

사람이 알아서 얻은 하찮은 괴로움

꽃잎에 실어 날려 버리는 거지

피어나는 꽃 속에 희망을 담고

꽃잎에 매달려 구르는 물방울처럼

맑은 세상을 담아보는 거지

탐욕의 칼날 위에 서서 춤추지 말고

사랑 한 겹 깔아놓고 누워서

파란 하늘 바라보는 거야

귀로 들리지 않는 진리의 소리를

마음으로 조용히 들어 보는 거야

나처럼 우아하고 의연하게

활짝 웃어보라고 모란은 속삭인다.

 

 

목련이 필 때면 / 충암 이영길

 

하얀 목련이 뽀얀 속살을

드러내고 활짝 필 때면

석고처럼 응고된 추억이

철철 녹아내립니다.

 

그리움으로 질퍽이는

긴 기다림의 모퉁이로

아련히 떠오르는 그대는

사랑의 무지개다리가 걷힌

 

세월의 강 저 건너에서

물결에 흔들리는 달빛 밟고

그리움의 창가에 다가와

내 영혼을 깨우는 환영입니다

 

사라질까 지레 잡지 못하고

달빛에 목련이 피고 있는 밤

회상의 잔에 찰랑대는 보고픔은

캄캄한 밤 어둠에 갇힌 슬픔이

 

새벽 풀잎에 망울진 이슬처럼

서러운 눈물로 넘쳐나고

내 가슴 기다림의 방 한 칸은

오지 않을 기다림을 또 채웁니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생각나는 당신은

봄이 오면 피어나는

내 가슴의 영원한 목련꽃 입니다

 

2008. 3. 16

 

묵향에 맑은 마음(墨香淸淨心) / 충암 이영길

 

사각사각 먹 가는 소리

벼루와 먹이 마찰하는 합창소리

먹의 살이 깎이고

정적이 시간을 삼키면

까맣게 짙어지는 먹물의 농도

은은한 묵향이 번져나면

번뇌의 요동은 진정되고

마음이 맑아진다.

 

하얀 종이에

획을 긋고 점을 찍고

까맣게 마음을 옮긴다.

붓 끝에 실린 마음은

저만큼 앞서

아름다운 필선을 펼치는데

붓 잡은 손은

난획을 긋고 있다

 

문자향(文字香 ) 서권기(書卷氣)를

그리 쉽게 터득할까

아서라, 헛된 욕심 버리고

무념무상으로 잡념을 태워

마음 갈피에 욕망은 접어두고

마음물결 맑게 하여

무욕의 점획에 세월을 묻어보자

 

2008. 3. 24.

 

 

 

문장대 예찬 / 충암 이영길

 

속리산, 세속을 떠나 홀홀히 서서

욕망의 숲을 벗어나 반야의 연봉에

우뚝 선 문장대의 묵연(黙然)한 위용

법주사미륵대불 후광을 안고

복천암 독경소리 귀기우려 듣고 있나

 

산골짝 도랑물 졸졸 정겹게 흐르고

진달래 흐드러지게 피어나는데

산장으로 차오르는 봄을 외면한 채

의연한 문장대는 명상 삼매에 깊이 들어

법열(法悅)에 잠겨 득도를 했나보다

 

모든 존재는 덧없이 변해가고(諸法無常)

시간을 타고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

느낌도 감흥도 서로 다르지만

모든 변하는 것은 실체가 없음을(諸法無我)

문장대는 변치 않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구름이 걸치면 신비한 모습으로

비바람 몰아치면 의연한 모습으로

흰 눈에 덮이면 자애로운 모습으로

주름진 산록에 철따라 치장하고

겁의 세월 버티어낸 기상에 찬탄한다.

 

 

 

 

 

 

미선나무 꽃 / 충암 이영길

 

4월이면 순결한 영혼을

하얀 꽃으로 피워

그윽한 진한 향을

뿜어내는 미선나무

세상의 잡연을 끊고

오직 한 속으로 존속하는

고결한 성정은

다투고 시기하며 사는

치열한 삶이 싫어

황폐한 땅 돌 서들 틈에

군락을 이룬 미선나무는

천상의 꽃이 지상에

하강한 선종인가보다

다닥다닥 붙어 핀 하얀 꽃

은은히 번지는 짙은 향기에

마음을 매고

환한 기쁨에 취한다.

 

 

 

봄 산행 / 충암 이영길

 

화사한 얼굴로 보드랍게

감싸는 봄볕을 받으며

호젓한 산길에 접어들면

옥빛의 푸른 시냇물 소리치며 흐르고

바위 끝에서 은빛 나래를 펴고

시원하게 내리쏟는 물줄기 옆으로

응달진 바위틈엔 하얀 얼음이

서러운 눈물로 녹아내린다.

 

돌 서들에 선 생강나무엔 *

가녀린 노란 꽃술이 수줍게 피어나

옹기종기 매달려 있고

인기척에 놀란 다람쥐가

바위에 올라서서

두발로 얼굴을 비비며

앙증맞은 재롱을 피운다.

 

얼어붙었던 응달진 산길은

떠난 겨울과의 아픈 이별이

그리운 눈물로 녹아나 질퍽이는데

푸른 휘장을 펼친 듯 무리지은 산죽이

봄바람에 춤추며 사각사각 다가서고

능선 맞닿은 푸른 하늘이

해맑은 얼굴로 웃고 있다

 

정상에 올라 보니 *

세상은 운무에 가려있고

하늘엔 조각구름 걸렸는데

넓은 자연의 품속에 안기어

마음을 내려놓고 눈 감으니

세사를 잊은 신선인 듯하다.

 

 

봄비 / 충암 이영길

 

봄비가 내린다.

보름밤 어슴푸레 어둠속을 헤집고

꽃무늬 치마 자락 살랑이며

사뿐히 다가오는 여인의 발길처럼

보드랍고 정다운 봄비가 내린다.

 

봄꽃은 활짝 웃으며 피어나고

파릇한 새싹은 으쓱 자라나겠지

나무에는 새순이 돋아나고

봄비는 생명수가 되어

생동의 기운을 가득 불어 넣을 것이다

 

속삭이는 봄비의 유혹에

선잠을 물리고 문밖을 나선다.

촉촉이 젖은 대지가 뿜어내는 토향(土香)

모태(母胎)의 원초적 냄새처럼

울컥 토할 듯 솟구쳐 밀려오는 그리움

 

아련한 세월너머 추억의 구비를 돌아

기다림으로 발돋움하며 넘겨보는

정갈하고 싱그러운 젊음의 편린들은

이젠 기억에 묻어둔 그림 한 장

육신이 돌아갈 땅 흙 향기에 진한애착이 간다.

 

2008. 3. 15

 

 

 

 

 

 

 

봄은 오는데 / 충암 이영길

 

눈 녹은 시냇물

도란도란 속삭이며 흐르고

냇가 버드나무 가지엔

새하얀 털북숭이 버들강아지

굼실굼실 귀엽게 매달렸다

 

이렇게 봄은 오는데

불쑥 찾아드는 불청객이

훼방을 놓고 있다

어제는 누런 황사가 세상을 뒤덮고

오늘은 때늦은 봄눈이 철적께 내린다.

 

그래도 잔설 사이로 복수 초는

가냘픈 노란 꽃을 피워내고

응달진 담장 밑 상사초는

채 녹지도 않은 땅을 뚫고

갸웃이 수줍은 얼굴을 내민다

 

생동의 힘이 약동의 기운이

대지에 스멀스멀 움직이고

배시시 웃는 고운 햇살에

아지랑이 춤추는 봄이 오는데

마음 단장하고 봄맞이 나서야지

2008. 3. 4.

 

 

 

봄을 줍던 사람들 / 충암 이영길

 

입춘지나 우수가 다가오는데

봄을 막아선 추위가

볼썽사납게 심술을 부리고

양지바른 언덕 가시덤불엔

앙증맞은 새까만 굴뚝새들이

떼 지어 지저귀고 있다

 

동구 앞을 흐르는 냇가 방죽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얼어붙은

개똥을 망태에 담아 모아다가

땅 풀리면 돌담 밑 구덩이에

개똥 듬뿍 넣고 호박을 심던

불현듯 스치는 개똥할아버지모습

 

지금 생각하니

할아버지 동그란 마음에는

더러운 개똥에도 상긋한

봄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굽은 허리를 펴며 환한 얼굴로

다가서는 봄을 줍고 있었나보다

 

가몰하게 도망 가버린 세월너머

가로막이 추억의 포장을 들추고

얼굴 내미는 기억의 편린은

아련한 그리움 속에 핀 들꽃 한 송이

좁고 메마른 내 영혼의 그릇을

 

 

 

 

연등에 불 밝히고 / 충암 이영길

 

부처님은 어디에 계실까

명산대찰 대웅전 좌대위에 정좌하고

부처님 오신 날

절마다 연등달아 불 밝히고

호화로운 봉축행사 넘쳐나는 사람들

부처님 받드는 그 정성에 감복하고 계실까

 

구도의 목마름은 아니라도

마음에 내재한 불성이

욕망의 흙탕물에 희석되지 않고

황톳물 가라앉은 지장 수처럼

깨우침의 맑은 물이 솟아나는 곳에

 

남의 발아래 경건히 허리 굽히는

낮은 마음으로 섬기며 베풀고 사는 것이

스스로를 높이고 섬기며 사는 것임을

깨닫고 행하는 비운 마음에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까

 

부처님 오신 날

마음속 불성에 부처님의 광명을 밝혀

어리석음 한 조각이라도 떼어 낸다면

허황된 욕망의 그림자를 지운다면

연등에 불 밝히는 세상은 아름다우리라

 

 

 

 

 

 

밤에 뜨는 무지개 / 충암 이영길

 

후드득 창 밖에서 들리는

빗방울 소리에 창문을 연다.

칠흑 같은 어둠이 확 밀려든다.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정적을 깨우고

구슬픈 소쩍새 울음은 멎었다

스르르 바람에 실려 오는 흙냄새가

어머니 젖 냄새처럼 그리워지는

질퍽이는 옛 고향생각 실어오면

 

깊은 밤 성글게 내리는 빗소리에

가슴속 향수의 가마솥엔 그리움이 끓고

도롱이 걸치고 빗속에 물고 보던

성성한 아버지모습 아련한데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보고픈 얼굴들

 

돌아오지 않는 세월의 강 저편

빛바랜 추억의 갈피에서 피어오르는

비개인 푸른 언덕 너머로 뜨는 무지개

곱고 아름답던 추억속의 고향을 헤맨다.

 

 

 

 

 

 

생강나무 노란 꽃 / 충암 이영길

 

산기슭 외진 곳에 수줍게 피어나

봄바람 손길에 파르르 떠는 노란 꽃

찾아드는 벌들도 여린 꽃에 앉지 못하고

파들파들 날갯짓하며 입 맞추네

 

외롭게 피어나 보는 이 없어도

꽃술 다문자리 오밀조밀 맺은 열매

매운 정절 일편단심 보살펴서

산 동백 푸른 알이 흑진주 되고

 

아름다운 여인의 삼단 같은 머리

동백기름 흠뻑 발라 자르르 윤기 나던

그 옛날의 향수(鄕愁)가 그리워지는

내 마음 고향의 꽃이 되어버린 넌

 

봄바람이 살랑살랑 꽃술 흔들고

산새들이 노래하는 산기슭에

수줍은 미소 지며 순결하게 피는 꽃

생강나무 노란 꽃

 

 

2008. 3. 18

 

 

정말 소중한 사랑은 / 충암 이영길

 

우리 소중한 사랑은

허기진 그리움에 가슴앓이 하고

출렁이는 보고픔에 가슴이 끓고

활화산처럼 정열이 불타고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두근대고

바라만 보아도 전율을 느끼는

사랑인줄 알았습니다.

 

세월이 감긴 삶의 줄기에

희망의 가지는 모진 세파에 꺾이고

마음 깊이 박혀버린 옹이는

미움의 결로 번져나서

망각의 물결에도 지워지지 않고

이젠 추억의 문양이 되어

담담히 돌아보는 인생의 황혼녘

 

정말 소중한 사랑은

바람처럼 물처럼 곁에 있어

언제나 숨 쉬고 물마시며

고마움 잊고 지내는 것처럼

항상 곁에서 기쁨도 슬픔도 함께하며

이해와 사랑으로 보살피고 감싸준 사람

옆에 있어서 고맙고 소중한 사람입니다

 

 

 

어머니의 바다 / 충암 이영길

 

여든 다섯의 어머니가 입원한 병석을

예순여덟 아들이 지키고 있는데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어 아들에게 주면서

밥 사먹고 바람 쐬고 천천히 들어오란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

디딜방아에 벗겨낸 거친 보리 겨로

보리개떡을 만들어 주시던 어머니모습이

문득 떠오르면서 가슴이 울컥 메어온다

 

백발이 성성한 아들을 품속에 품고

병석에서도 걱정의 끈을 잡고 있는데

어머니 마음에 햇살 바른 양지가 아니라

그늘진 응달 수심의 그림자 이었구나.

 

어머니의 바다에 뒤뚱대는 종이배로

사우로 흩어진 자식들은 멀어지고

그리움 삭이며 애태우는 간절한 기도는

출렁이는 근심의 파도위에 이는 바람결

 

어머니 이제 자식걱정의 줄을 놓으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안식을 찾으소서.

마음에 이는 수심의 바람을 막아서며

황혼 깃드는 어머니의 바다를

이제는 자식들이 지키렵니다.

 

 

언제 다시 당신은

 

만남의 희망이 있는 이별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닙니다.

그네 타듯 출렁이는 그리움이

가슴에 일렁이는 이별은

행복한 이별입니다

잊었다 생각 했는데

밤이면 속절없이 살아나는

그리움에 뒤척이는 이별은

꿈이 있는 이별입니다

가슴에 남아

슬픔으로 저무는 당신은

여울에 목 놓아 울며

흐르는 물살처럼

언제 다시 돌아올 기약 없는

이별을 남기고 갔습니다.

내 마음의 감옥에

당신을 가두고 풀어주며

함께할 당신은

전생에 일어버린 한 조각

내 분신이었나 봅니다.

 

 

 

연둣빛 그리움 / 충암 이영길

 

라일락 향기 물씬 묻어나는

싱그러운 계절을 붙잡고

아쉬움 삭이는 마음의 언덕엔

연둣빛 그리움이 돋아난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꽃처럼

반갑게 만나 웃는 얼굴

헤어지면 살며시 아쉽고

보고 싶은 그리움

 

허물없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마음의 깊은 주름을 펴고

저녁놀 곱게 물든 꽃길을

나란히 걷다 뒤처지면

 

돌아봐 주기를 기다리는

어리광스런 마음에 살짝 민망한

연두색 여린 이파리 같은

보드랍게 피어나는 그리움

 

꽃그늘 속에 핀

조그만 꽃다지 꽃처럼

그리움도 철없이 작아져 간다.

 

 

春雪有感 / 㳘岩 李榮吉

 

작별 없이 돌아서 가다가

아름다운자태로 사뿐히 되돌아서

세상을 하얀 품속에 안고 웃고 있는 너

 

겨울의 임종을 지키는 소복한 여인처럼

순백의 아름다운 설화에

묻어나는 애잔한 잔영은

 

속으로 녹아 흐르는 아픔이

눈물로 번지는 슬픔의 자리에 세운

사라질 하얀 세상의 애절함인가

 

따뜻한 봄의 품속에

칼날처럼 시린 이지의 각인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는 춘설은

 

하얀 치마폭에 세상을 휘감고

한 자락 춤사위 남겨놓고 홀연히 사라진

가슴 속에 세워진 또 하나의 신기루

2007. 2. 26 봄눈을 보고

 

 

 

 

 

 

푸른 5월이면 / 충암 이영길

 

함초롬히 늘어트린 푸른 머리 결

능수버들은 아침이슬에 머리감고

호수 가에서 뭉게뭉게 피어나는

뽀얀 안개를 휘감고 서 있다

버들가지 사이로 새어나는 바람에

흩어지는 안개 결 따라 아련히 떠오르는

지난 삶의 발걸음에 묻어나는 기억들

하얀 찔레꽃에 번지는 짙은 향기에

허기진 배를 찔레 순 꺾어먹으며

보릿고개 배고픔을 부황난 얼굴로

한숨으로 보내던 그 잔인한 5월

핏기가신 얼굴, 파리하고 초췌한 어머니는

설익은 보리이삭 아픈 마음으로 잘라 볶아서

자신은 주리면서 자식들 거두면

달짝지근한 그 맛이 왜 그리도 맛있던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희생과 사랑으로

감싸던 가족과 이웃들의 정과 사람냄새가 그립다

싱그러운 푸름이 산하를 물들이고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

무지갯빛 향기를 품어내는 5월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난날의 아픈 추억이

그리움의 물결로 밀려와 마음에 파도를 친다.

 

 

 

 

 

 

 

 

품바축제 / 충암 이영길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구성진 가락 해학 넘치는 넉살

누더기 옷에 까칠한 몰골

삶의 밑바닥에서 유랑과 걸식의

슬픈 애환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거지인생

구걸을 해도 노래장단과 걸쭉한 입담으로

밉상을 받지 않고 구경꺼리가 됐던 품바가

 

얼짱 몸짱들이 누더기를 걸치고

품바로 망가진 모습에 희희낙락하며

구걸한 음식을 모아 끓여먹던

비렁뱅이 탕이 별미 음식으로 둔갑하고

신나는 음악 장단에 춤추고 노래하며

흥겨운 유머 한마당에 엿판이 동나고

스타품바 인기품바가 판을 치는

웃음거리 볼거리의 즐기는 축제마당

슬픔과 한이 새어나간 품바타령엔

가슴 찡한 울림은 없고

허탈한 웃음소리만 허공을 맴돈다.

 

병든 몸으로 구걸한 음식을

다른 병든 거지에게 나누어주던

거지성자 최귀동 할아버지의 박애정신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꽃동네의 나눔과 봉사의 큰 사랑

축제의 영혼은 어디가고 화려한 허울에

천박한 상혼의 깃발이 펄럭이는가.

품바의 웃음 속에서 사랑의 불꽃 타올라

모두의 가슴에 나눔과 돌봄의 불길 당겨

사랑하고 나누며 사는 축제가 되어라

 

2008. 4. 18. 음성 품바

 

 

 

 

할미바위 / 충암 이영길

 

펑퍼짐한 바위능선에

우뚝 선 할미바위

산 그림자 드리운 골짜기

아늑한 마을 굽어보며

화사한 햇살에 조는 듯하다

 

발밑의 천길 벼랑보다

가파른 절벽 같은 외로움을

한숨으로 토하며

그리움 삭히며 보낸

천년의 세월

 

할미바위는

오늘도

오지 않는

할아비바위를

기다리고 있다

 

침묵으로 출렁이는 외로움위로

비바람 모진 세파

아픔을 덧칠하고

그리움 허물다 돌아보면

더 많은 그리움만 쌓여

외돌아져 서 있는

쓸쓸한 그림자

 

 

 

 

 

바람소리가

한숨처럼 들려오면

눈물보다 더 슬픈

보고픔에 목메어

파란 하늘에 새기는

허기진 그리움

 

떠가는 흰 구름에

실려 보내고

희망의 옷자락을 여미어

세월을 잊은 채

서있는 할미바위

 

 

 

 

 

 

 

 

향기로 말하는 그리움 / 충암 이영길

 

푸른 숲 사이로 불어오는

맑은 바람에 실려 온 꽃향기는

계절의 뒷자락으로 떠나는 봄이

향기로 말하는 이별의 인사

 

푸른 산은 하늘을 붙잡고

구름은 잡은 손길 사이로

유유히 흘러가고

하늘은 파랗게 웃고 있다

 

봄은 향기를 남긴 채 떠나고

푸른 5월 너머로 짙푸른 6월이

여름을 안고 고개를 내미는데

향기에 묻은 그리움은 붓꽃 끝에 하늘댄다.

 

진보랏빛 붓꽃이 필 때면

망각의 심연에 연꽃처럼 피어난

한 조각 그리움에 가슴 저미는

굽이돈 세월 저편 사랑의 향기

 

황홀한 그리움은

상념의 바다에 이는 황금빛 물결

연민의 바람결에 흔들리는 마음은

못 다한 미련의 빗장을 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