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찬, 반.

선행학습(先行學習)은,
남보다 앞서서 하는 공부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선행학습은
그 대표적인 형태가 ‘예습’ 이다.
예습은
앞으로 배울것을 미리 익히는 것이며
이에대해
복습은 배운것을 다시 익혀 공부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바둑에서의 복기(復棋)가 그것이다.

‘예습과 복습만 제대로 해도
우등생이 될수있다.’ 는 말은
그래서 빈말이 아니다.
예습을 기준한다면,
학교공부에서
앞으로 배울 교과목에 대해
미리 공부하는것 이기 때문에
그 범위는
학교의 교과과정-커리큘럼 안에서의
선행학습이 된다.
그러나
선행학습이
자기학기에 배우게 되는
교과과목을 넘어서거나
그 목적이
학교 안에서의
긍정적 예습의 범위를 벗어난다면
엄격한 의미의 ‘예습’ 은 아니다.
입시만을 위한
각종 사설학원의 선행학습은
그래서
일반적 의미의 예습이 아니라
특수목적을 위한
‘기능적선행학습’ 이 된다.
망국과외론이 나온 배경이 그러하다.
이 문제는
지금도 커다란 사회이슈로 자리잡고 있으며
공교육이 붕괴된
가장 큰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선행학습 금지’ 를 공약으로 내 세웠다.
그 내용은,
초,중,고교에서
학년별로 정해진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시험문제출제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학교, 학교장을 처벌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대학들이 논술등 입시에서
교과과정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계획도 발표했다.
이 공약에 근거,
선행학습금지법인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 제정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고있다.
그런데
이 법은
사설학원 에서의 선행학습은
포함하지 않을 방침이어서
그 효과에 대해 의심하는 이들이 많다.

1980년
전두환정권 당시 ‘과외전면금지법’ 으로
선행학습을 금지했지만
음성적인
과외시장은 더 커졌으며
2000년 헌법재판소는
과외금지법이
공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을 갖추지 못해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위헌결정을 내린바 있다.
공부를
좀 앞서서 하겠다는것을
법으로 제한하는것은
기본권 침해라는 의미로 해석 할수 있다.
먼저
선행학습금지법에 대해
찬성하는쪽의 의견을 들어보면,
초등학교때 중학교 과정을,
중학교때 고등학교 과정을
미리 배우는것은 비정상적인 일로서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주부가
신문에 기고한 글을보면,
서울지역 외고에 합격한 아들이
합격의 기쁨도 누릴사이없이
국,영,수 평가고사를 봤는데
고1
전 과정을 망라한 문제가 출제됐다.
고등학교 교과목에 대해
선행학습이 없었던
이 우수한 아들은 졸지에
보충수업을 받아야 하는 열등생이 되었다는 것이다.
제학기-중학교과정- 에 배운 내용으로
평가고사를 봤다면
이런 황당한 일은 있을수 없지만
많은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기준으로 출제하기 때문에
‘제철학습’ 이
결정적인 불이익을 받은것이다.

다른 한가지는,
선행학습 때문에
제학기의 제철교육이
부실해 질수있다는 점이다.
단계별-학년별 커리큘럼은
선행학습에 대한 전제없이
짜여진 교육-교과과정이다.
따라서
선행학습 없이 교육받아야
다음단계로 갈수있는
체계적 지식을 습득할수있다.
또 한가지는,
지금과 같은
부정적인 선행학습을 금지해야
공교육을 정상화 할수있다는 주장이다.
지금 학원에
안 다니는 애는 거의없다.
그 아이들이 내놓고 이런 말을한다.
‘학교는 빠져도 되지만 학원은 안된다.’
공교육이
사교육에 함몰된 정도가
어떤것인지를
한마디로 함축한 표현이다.
학원-사교육이 공교육에 앞선다면
공교육의 붕괴와 함께
국가의 ‘교육’ 자체가 위험해 진다.

모두가 아는대로
학원은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전인교육(全人敎育) 이 없다.
인격적인간을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학원은
입시만을 위한
‘답안지작성기술’ 을 훈련하는
장사꾼의 가게일뿐이다.
사실
그들에게
그 이상의 기대를 가지는것
자체가 잘못된것이다.
상업주의는 이문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부분적인 전문성에서
학교교육을
능가하는 경쟁력이 있는것도 사실이다.
학원강사들과
학교교사들을 수평비교 하면
어느쪽이
우수한지는 금방 드러난다.
그만큼
공교육으로서의 학교와 교사들이
뒤처져 있는게 사실이다.
더 심도있는 주장의 하나는,
모든학생은
그 년령대에 맞는
제학기, 제철교육을 받아야
균형이 잡힌, 깊이있는
사고력을 가질수 있다는 것이다.
선행학습이
제철교육의 시간을 앗아가는것만큼
교육내용이
부실해 질수있는것은 사실 이다.

과일과같은 먹거리도
제철에 생산된것이
가장 좋은것과 같은 이치다.
더러는
선행학습이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방해만 할뿐
큰 유익도 없다고 주장하며,
일부는
선행학습을 할수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사이의 위화감을
염려하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학교교육만으로
학교시험을 소화할수 있다면
엄청난
사교육비를 줄일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논리적인 주장을 펴는 부모들중엔,
학교가
예습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적합한
보수교육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공교육-학교교육이
그 내용에서
사설학원을 능가하지 못하면
이 문제는
해결될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된다.
그래서
풀어내기 어려운
모두의 숙제이기도 하다.

선행학습금지법에 대해
그 제정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결코 작지않다.
그들이
가장 크게 지적하는 점은
전두환정권때 처럼
선행학습이 법으로 금지되면
음성적인 사교육시장이 더 커지고
위험부담만큼
사교육비도 크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가계의 압박으로 이어질 터이다.
어떤면에선
한국의 사교육시장이
공교육을 압박하는 수준까지 성장한것은
법이 금지 했기 때문에
지하에서
그 세력을 키운 측면이 없지않다.
다른
하나의 주장은,
선행학습금지법이
개인의 학습권리를 지나치게 침해 한다는 것이다.
이미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도 있었지만
이 주장은
그 근본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수 있다.
또 하나의 주장은,
어떤 학생에게는
선행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학습진도에서
평균보다 떨어진다면
선행학습과 같은 보충수업은 필수라는 얘기다.
이런 학생들을
학교가 모두 흡수했다면
선행학습문제가 지금처럼
커지지 않을수도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본다면,
이번에
그 제정이 추진되고있는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은
사설학원이 제외되었기 때문에
기대만큼의
효과를 낼지는 의문인것이 사실이다.

이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학부모들까지도
같은걱정을 하고있을 정도다.
학교들만 제재하는것 만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수 없다는 비관론이 그것이다.
사교육을 제외하는 경우,
사교육시장에서
선행학습을 할수있는 가정과
그렇지못한
가정은 계층적 차별화가 일어날 수 있다.
지금도 이미
‘돈 없이는 공부도 제대로 할수없다’ 는 얘기가
공공연히 들리고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 자체는 없앨수 없는것 이지만
어떤법이나 제도가
그것을 부추긴다면
그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수있다.
선행학습이 가지고있는
폐해의 한쪽뿌리인 사설학원도
그래서
제재의 대상이 돼야
그 근본취지가 살아날 수 있는게 사실이다.
물론
쉬운일은 아니지만
거대한 사교육시장의 반발 때문에
학원이
그 대상에서 제외 되는것은
반드시
다시 생각해 봐야할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2012년 5월,
신한은행은 전국 24-59세 사이의 고객
1,5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많은 통계가 있지만
금융기관의 이 조사는
그 밀도와 체감에서 각별한바 있다.
조사결과
전체가정은 자녀의 교육비로
월평균 134만원을 지출하고 있었다.
유치원이 89만원,
초등학교가 93만원,
중학교가 108만원,
고등학교가 149만원 순이었다.
이 조사에서 알수있듯이
웬만한 중산층은 사교육비로
월 100-200만원을 쓰고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맞벌이하는 부부의 경우
수입보다 지출이
더 빨리 늘어나는 현상까지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집이나
사교육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공부외에
사교육을 받느라 초죽음이 되고,
부모들은
그나마 팍팍한 살림에
사교육비 대느라 휘청거리고,
사교육을 시키지 못하는 가정은
‘우리아이만 뒤처지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사교육이
한국의 가정, 한국의 학생,
그리고
우리사회에 미치고 있는
이러한 부정적 기능을 생각하면
지금처럼
이 문제를 방치만 하고 있을수는 없다는것은
자명한 일이다.
친한파의
세계적 석학인 엘빈 토풀러는,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15시간이상 학교와 학원에서
자기들이 살아갈 미래에는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을 배우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고 했다.
선행학습이
교육적 낭비라는 지적이다.
가계가
휘청거릴정도의 사교육비 지출이
단지
입시만을 위한
‘기능적훈련’ 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지금의 학원식 선행학습은
커다란 낭비라고 할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지금의 선행학습이
학교에서의 예습적기능과
학원에서의 교육낭비 라는 측면에서
비교돼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는
그 필요성이 없는 지식을 배우느라
노심초사 하고있는
이 미망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큰 착각은
학원의
‘입시기능훈련’ 을
‘교육’ 이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학원은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주의일뿐
인간을
인격적으로 길러내는 학교는 아니다.
또
그것을 기대해서도 안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공교육의 중요성은
부존자원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나라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우리의 자원은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입시’ 라는 초미의 목표가
사교육시장을 키웠고
예습이 아닌
기능성선행학습으로 이어졌으며
그 치열한
경쟁에서 탈락한 백수가
백만단위로
늘어난게 오늘의 현실이다.
선행학습의 문제는
그 뿌리가 가치관에 있다.
그래서
가정, 학부모의
성찰이 요구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원인을 제거하는 차원에서의
국가교육정책이 절실히 요청된다.
대학의
출제범위와 방법이 바뀌지 않는한
학원의 수요도 줄지않는다.
공교육이 정상화 되지못하면
전인교육을 받지못한
‘편식인간’ 이 양산될 뿐이다.
그 부족한 부분이
국제경쟁력의 약점이 되는것은
불을보듯 확실하다.
긴 안목에서 본다면
사교육학원들은
과목별 전문보습기능으로 바뀔것이며
진학률의 감소와 함께 축소될것이다.
그만큼
공교육이 제 궤도에
들어설 공간이 커 지는 셈이다.
그래서
선행학습의 문제는
지금의 문제이지 앞으로의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교육의 기본이
제자리로 돌아 오는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 이다.
단지
시간이 걸릴뿐이다.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려서는 안된다.
내일은 만들어 가는것이다.
- 가스통 베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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